빈집(Empty House)

 

무심코 눈에 띈 것은 처량하게 부서져가는 아파트였다. 지금까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아파트였다.

그대로이던 나의 동네는 변화를 시작했다. 30년간의 풍파를 이겨내는 동안 다 벗겨져 떨어져 나간 페 인트 껍질, 몇번이고 다시 그려진 주차선, 무성하다 못해 시야를 다 가려버리는 나무들,

이 모든 것은 ‘익숙함’이었다.
며칠만에 그 아파트는 사라졌고 볼 수 없었던 파란 하늘만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그 후 줄줄이 다른

아파트들이 부서졌다. 그렇게 나의 편안한 기억들이 같이 부서져 내려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변화는 나에게 큰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주황빛 기억들

의 장소가 사라지고 과거로의 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재건축이 다가오는 나의 아파트는 빈 집이 되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집은 탁한 냄새를 풍기며

낯설음의 공간으로 다가왔다.

‘빈 집(Empty House)’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공간인 집을 떠나는 상실감으로 시작된 작업이다. 사 람들과 함께 사라져 버린 기억들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집 안 곳곳에 여러 작업들을 시도한다.

망각에 대한 저항, 기억에 대한 욕구를 가장 절실히 표현하는 직접적인 텍스트는 작은 방과 화장실에 각각 보여진다.

그리고 기억을 붙잡아두는 장치인 ‘기억유지장치’가 가장 작은 방에 설치된다. 기억유지장치가 무한 히돌아가는동안만큼은허전한쪽방은미술작품이전시되는공간으로탈바꿈되는것이다. 또보이지 않는 기억들이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공동의 구역인 거실. 티비가 사라진 거실에는 지저분한 라지에터만이 덩그라니 남겨져 있다. 그 곳은 첼로 연주가 열리는 또 다른 공간이 된다. 이 것은 이사를 가고 난 후 집으로써의 제기능을 상실한 공간을 특별한 공간, 다른 공간으로 바꾸는 것과, 나아가서는 집 안에 무형의 보이지 않는 기억들 과 작별하고 인사하는 시간이 된다. 이 작업은 첼로 연주자는 본인이 직접 받은 느낌으로써 곡을 선곡했 고 작가와 연주자가 협업하여 공허한 거실을 채워나가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빈 집(Empty House)’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집에서의 작업을 의미하기도, 공허한 공간을 특 별한 공간으로 바꾸고 집 안에 서려있는 기억들을 간직하기 위한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있음을 의미하기 도 한다.